베르메르,  델프트 풍경, 1661년 경,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

Johannes Vermeer, View of Delft, c. 1660 - 1661, Royal Picture Gallery Mauritshuis, Hague, the Netherlands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미리 알아야 하지만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걸이 소녀가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그림 자체로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영국 생활 중 내가 네덜란드를 여행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작품들을 보기 위해서였고 특히 렘브란트와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에서 나는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이라는 대작을 봤고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이라는 작품을 봤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함께 네덜란드 미술의 또 다른 보고로 알려진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Mauritshuis)은 내장 공사 중이라 주요 소장품들은 가까운 헤이그 시립미술관(Gemeentemuseum Den Haag)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었으며 게다가 마우리스하위스의 엑끼스이자 베르메르의 걸작이라 할 진주 귀걸이 소녀는 일본으로 외출을 나가 헤이그시립미술관에서조차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봤으니까 괜찮았다. 인터넷 화면으로 본 델프트 풍경은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라 전에는 그다지 눈 여겨 보지 않았는데 델프트 풍경의 원작을 눈 앞에 놓고서야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지상 풍경 대부분은 구름이 만든 그늘 아래를 묘사한 것이었고 그 그늘 아래 풍경과 대비되는 오른쪽 햇살 아래 풍경은 눈부신 노란색 델프트 지붕과 벽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 그늘은 모니터나 인쇄물이 재현할 수 없는 표현의 한계 때문에 어둡고 음산해 보였던 것이다. 헤이그에서 스히담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베르메르가 태어나 살다 죽고 묻힌 델프트에 들렸다. 델프트는 델프트 블루라고 하는 파란색 문양이 그려진 도자기로 유명하고 상술에 기가 막힌 네덜란드 사람들은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어느 곳에나 기념품으로 그 델프트 블루를 내놓고 있었다. 유럽의 그 많은 교회 성당 어디를 가더라도 입장료를 요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쾰른성당 조차 입장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델프트의 구교회(Oude Kerk)와 신교회(Nieuew Kerk)는 적지 않은 금액의 입장료를 요구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델프트 구교회 바닥에서 마흔 셋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세기의 화가 베르메르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그 자리를 봤으니까. 그날 델프트의 날씨는 흐리고 비바람이었다.

여성 작가의 소설은 문장 한 구절마다 피로한 집중을 내게 요구하므로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2005년에 샀던 것으로 짐작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소설도 대충 읽다가 덮어 버렸다. 네덜란드 여행 후 그 소설책을 다시 읽었다. 그 소설은 베르메르를, 그가 나서 살다 죽고 묻힌 델프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쓴 소설이라도 괜찮았다. 지금도 베르메르의 묘지 앞에선 내 발 끝이 담긴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베르메르의 묘지 앞에서 서 있었다는 것이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2

델프트 구교회 바닥, 베르메르의 묘비석

The Oude Kerk (Old Church) , Delft, the Netherlands

201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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