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2013. 11.
주말에 회사 동료 직원들과 북악산 서울 성곽길을 도는 나들이에 나섰다. 아침부터 내리는 적잖은 비를 핑계로 이불 속에서 문지방을 넘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일단 넘고 나니 모든 것이 순조롭고 비 오는 날 산행이 꽤 운치 있고 즐거운 일임을 알았다.
계면쩍은 북악산 정상 산행 후 성북동에서 막걸리를 반주 삼아 돼지불백, 곧 돼지불고기 백반으로 거하게 점심 들고 혜화동을 거쳐 종로 쪽으로 걸어내려 오다 창경궁(昌慶宮) 앞을 지나게 되었다. 동료 직원 한 사람이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앞에서 걸음을 딱 멈추더니 문화재 안내판을 유심히 읽었다. 덩달아 나도 잠시 안내판에 눈길을 줬는데 세종(世宗)이 선왕인 태종(太宗)의 거처로 처음 지은 수강궁(壽康宮)에서 창경궁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안내 첫 구절을 읽다가 궁궐 내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안내판을 열심히 읽은 동료 직원이 우리 문화재 안내 설명에는 왜 하나같이 화재가 났고 일제가 훼손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냐며 반쯤은 농이 섞인 볼멘소리를 해서 일행들이 같이 웃었다. 역사가 오래된 목조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고 복원되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일제의 훼손 부분은 그저 웃기에는 마음 한편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문인 홍화문 너머에는 창경궁 정전 명정전(明政殿)을 향해 명정문(明政門)이라는 현판이 또 크게 붙어 있었다.
왕조는 망해도 정치는 이어지고 또 이어져야 하는데 오늘날 세월이 하(何) 수상해도 부디 명정(明政) 그 이름처럼 이 나라 위정자들이 밝게 정치를 해서 외세가 우리 문화재를 훼손했다는 이야기로 당대의 우리처럼 후손들이 씁쓸하게 웃게 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