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전등사 · 삼랑성
Jeondeungsa Buddhist Temple, Ganghwado Island, Korea
2023. 10. 21.
단풍 시즌 본격 시작이라는 지난 토요일 실은 우리나라 산과 절 중 단연 티어 원끕인 속리산 법주사 구경 가려했는데 날씨예보를 보니 속리산 쪽 날씨가 좋지 않다 해서 에라이 꿩 대신 닭이다 격으로 가까운 강화도 전등사 구경 갔다. 그런데 내가 전등사를 꿩 대신 닭 격으로 생각한 이유 그러니까 볼거리가 별로 없는 절로 생각한 이유 역시 날씨 때문이었다. 십여 년 전 전등사 가본 날이 하필이면 엄동의 혹한이 맹위를 떨치던 날이어서 전등사하면 그날 절을 찾은 신도들과 방문객들 추위에 언 몸 녹이시라고 대웅전 앞마당에 커다란 드럼통을 놓고 불을 때던 장면만 기억난다. 하도 추워서 다른 뭐가 눈에 들어오기 어려운 날씨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별 볼 거 없을 거라며 찾아간 전등사는 예전 내가 기억하던 절이 아니라 새발견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빼어난 경관을 가진 볼거리 가득한 절이었다. 우선 불가에서 받들어야 할 부처님들 다 받들고 모셔야 할 보살님들 다 모신듯 가람 규모가 상당했고 각 전각(殿閣)들은 옛것은 옛것대로 새것은 새것대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각들 다 제쳐 두고도 주차장에서 삼랑성 남문을 지나 본전인 대웅전에 이르는 길가에 장하게 자라 빽빽한 소나무며 느티나무, 은행나무 숲만으로도 이 가을에 대단한 볼거리다 싶었다. 게다가 어느 눈썰미 있는 스님의 아이디어인지 법당 앞마당에 ‘어린 왕자’ 같은 현대 조형 미술작품까지 앉혀 놓았는데 이것들이 절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서 이 역시 전등사의 볼거리라 불러 손색없었다. 이게 서울에서 가까운 수도권에 터 잡은 절의 세련미 같은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는데 서울하고도 강남 요지에 들어앉은 봉은사의 그 천박한 난리 부르스를 떠올리니 그보다는 전등사의 내력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이름난 큰 절들 대부분이 이를테면 6세기 신라 진흥왕때로부터, 원효대사님 의상대사님때로부터 내력을 따지는데 전등사야말로 4세기 고구려 소수림왕때로부터 내력을 따진다 하니 민쯩까기로 치자면 이미 전등사 승 아닌가?
절 구경 후 절 뒤편 조선 후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史庫) 구경을 하고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정족산 능선을 따라 두른 석성인 삼랑성 꼭대기까지 올라가봤다. 삼랑성 꼭대기 높이는 해발 222.5m로 전등사에서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는데 꼭대기에 오르자 사방 시야가 탁 트인 정말 호쾌한 뷰를 보여줬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맑은 날에는 삼랑성 꼭대기에서 북한 황해도가 보인다고 한다. 옛 기억을 되살려보니 십 수 년 전 전등사에서 티베트 불교식 마니차(摩尼車)를 봐서 신기하다 했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그 마니차를 볼 수 없었다.
배경음악
바이올린 조수민, 파가니니 곡 「칸타빌레」
violin Sumin Jo - Paganini: Cantabile Op.17